1907년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시대 헌종 때 궁중 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서·화' 삼절이라 불리우던 소치 허유(또는 허련)선생의 손자요,
화가인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남농 허건 선생은 우리고장의 문화 발전에 누구보다도 큰 공을
남긴 사람으로 선생이 태어난 당시 그의 집안은 너무도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화가들에 대한 사회의 대우가 아주 낮았기 때문이다.
그 후 강진을 거쳐 목포에 이사 온 이후에도 여전하였으나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한 후 부친으로부터
익힌 그림이 제9회 선전(오늘날의 국전에 해당)에서부터 23회까지 연속 입선하였고
1944년에는 선전특선 및 총독상을 수상하였으며 해방 후 1955년에는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었으며,
그의 이러한 예술적 활동이 인정을 받아 전남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 훈장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의 영예를 누렸으며 1984년에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국제저명인사전기편에
수록되는 등 국제적 예술가로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고장의 문화 발전을 위해 9년간이나 예총 목포지부장을 지냈고
갓바위에 자신의 재산을 들여 향토문화관을 짓고 거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할아버지 소치,
아버지 미산을 중심으로 한 귀한 고미술품과 오랫동안 온갖 노력 끝에 모은 수석을 아낌없이
목포시에 기증하고 우리고장의 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게 하였으며 남농 기념관을 지어 우리들 후배들로 하여금
그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고 이어 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1980년 목포대학 남농미술장학금을 제정하여 예술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었고, 1981년 목포예총 남농상을 제정하여 이 고장 문화 예술의 발전에
공이 큰 사람에게 주도록 하기도 하였다.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먹의 농담(진하고 흐림)으로 대담하고 굵은 선을 이용하여
주로 산과 들의 경치를 개략적으로 그려 내는 남종화의 맥을 이어 「낙지론」「번수종전도」 등 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남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고, 제1대 소치, 제2대 미산,
제3대 남농의 뒤를 이어 그의 조타임전 허문이 4대를, 그리고 장손자 오당 허진이 5대를 이어 예술의 세계를
열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애향심과 예술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도 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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