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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향 정광옥 한글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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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운동

남동순 할머니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9. 7. 26.

2010년, 108세의 남동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류관순(유관순 - 옮긴이) 열사와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여섯 살 소꿉친구로 만난 두 소녀는 이화학당에서 공부할 때까지 단짝처럼 붙어 다녔으며, 그러다보니 둘은 생각도 습관(버릇 - 옮긴이)도 닮아갔습니다.


독립운동(독립투쟁 - 옮긴이)을 결의한(굳게 마음먹은 - 옮긴이) 두 친구(동무 - 옮긴이)는 1919년 3월 1일, 함께 만세를 외쳤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간 두 소녀는, 모진 고초를 당하며 동지들의 이름을 대라고 협박당했지만,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류관순 열사는 고문을 이겨내지 못했고, 옥중(감옥 안 - 옮긴이)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남동순 할머니는 친구의 몫까지 싸우고자 다짐했습니다. (그 분은 - 옮긴이) 7인의 결사대에 들어가 애국 항일 운동(애국 항일 투쟁 - 옮긴이)에 더 열정적으로(열심히/열렬히 - 옮긴이)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 옮긴이) 독립군에 자금을 전달하거나(갖다주거나 - 옮긴이), 무장 투쟁 운동(그냥 ‘무장 투쟁’이라고 써야 한다 - 옮긴이)에 참가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전쟁고아를 위한 고아원을 운영했고, 돌아가실 때까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섰습니다.


류관순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남동순 할머니처럼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동순 할머니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어지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독립투사/열사/지사 - 옮긴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분들은 매우 적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 분들이 보여주신 희생의 가치가 치열한 일상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건 아닌가요?


희생의 가치가 사라진 나라는 미래(앞날 - 옮긴이)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 3.1 절(나는 이 날을 ‘독립<선언>일’로 부르고, 양력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로 부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참고로 이 제안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열두 해 전『전통과 현대』지에 실린 글을 읽고, 그 글을 바탕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 옮긴이)을 맞이하면서도 그날(서기 1919년 양력 3월 1일 - 옮긴이)의 그 함성은 세월이 갈수록 희미해져갑니다.


(독립투사/지사/열사 - 옮긴이)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이 가장 먼저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바랍니다 - 옮긴이).


- 류중현(<사랑의 편지>발행인)의 글


* 옮긴이(잉걸)의 말 :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남동순 열사님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학교에서 남 열사님의 이야기를 배우지 못했는데, 이런 훌륭하신 분을 왜 배우지 못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이 분은 한국의『역사』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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