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계란 꾸러미 / 정 광 옥
아침 일찍 일어나 닭장 속으로 향 하신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좁은 철망 속으로 손을
간밤에 계란을 못 꺼내 오셨나 보다
외양간 위에 지푸라기 꺼내
짚으로 만든 곱고 고운 하얀 계란 꾸러미
지푸라기 고운 맵시로 엮어 한 줄에 싸서
예쁘게 만든 가방 같기도 한
들고 가기 쉬운 계란 꾸러미
깨질까봐 아침에 만들어 주신 계란 꾸러미 가방
꼬불꼬불 강냉이 같은 논두렁길
가을이면
벼이삭이 익어 가니 이슬은 눈물 같고
이슬은 다리종아리에 걸려
옷깃에 젖은 바지는 축축하다
책가방은 보자기로 만든 것
허리에 질끈 매고 등 뒤에는 땀을 뚝뚝 흘리며
논두렁을 빠져나오면
도로는 탱크가 지나가고 인도 없는 길을 가노라면
가슴은 콩알 같아 울분을 먹으며 뛴다
계란을 팔아 미농지 (美濃紙) 사서
구겨질까 누런 양회 포대 싸
둘둘 말아 손에 들고 나서는 투명한 미농지
집집마다 씨암탉 몇 마리씩 길러
유일하게 학용품으로 바꾸는 고귀한 비타민 같은 계란
계란 팔아 미농지(美濃紙)를 사서 그 위에 쓰는 붓글씨
교실에 혼자남아 연습하면 붓글씨 잘 쓰는 아이로 남아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서예 연습을 한다
집에 갈 생각이 참혹하다
남루한 옷을 걸친 아버지
까만 씨앗으로 품은 어머니
한 갈래의 길만 가라 하신
달걀 꾸러미 들고 가는 길처럼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이다
아버지의 붓글씨는 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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