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 선생 문집 제1권 / 시(詩)
4월 3일에 여러 친구와 금강산(金剛山)을 향하여 떠남 임오년
제주의 남은 흥취 봉래산에 붙이니 / 瀛洲餘趣屬蓬山
기이한 구경은 우연히 만난 것이라네 / 奇觀徒從偶爾間
찬양할 문장력 없어 한스럽기만 / 却恨揄揚無大筆
모든 풍물을 등한히 보고 말았네 / 少多風物付虛閒
길에서 부름[途中口號]
좋은 벗은 다시 만나기 어렵고 / 好友知難再
명산 역시 한때 보는 것이지 / 名山亦一時
마음 깨끗하지 못할까 두렵지 / 祗嫌心帶累
머리 흰 것이 어찌 부끄러우랴 / 何愧鬢如絲
세상 생각에 눈물 흐르고 / 念世堪垂淚
나를 잊으니 슬픔 없어지네 / 忘形且塞悲
앞 길에 한없는 경치는 / 前頭無限景
곳곳마다 시를 새로 짓게 하네 / 隨到覔新詩
화적연(禾積淵)
신룡이 돌이 되어 깊은 못에 들어가니 / 神龍幻石走深淵
화적산이 높아 별천지를 이루었네 / 禾積輪囷別有天
창벽 아래로 조용히 걸어서 / 緩步經由蒼壁下
여울 앞에서 읊고 앉았네 / 朗吟坐久碧灘前
헛된 명망은 민생에 도움이 없고 / 虛名無補民生食
장한 유적은 나그네 옷깃이 연했네 / 壯蹟猶勞客袂連
적기에 비를 내려 주는 잠공은 / 賴爾潛功時作雨
만물을 즐겁게 자라게 하네 / 能令萬物各欣然
북관정(北寬亭)
훌훌 나는 지팡이 동쪽을 향하니 / 翩翩筇屐向東州
서쪽에 있는 임금 근심 간절하네 / 回首難寬望美愁
고도의 형세는 무수한 겁난을 겪었고 / 古都形勢經千劫
중요한 요새지로 몇 년이나 지났는가 / 重地關防閱幾秋
세 성씨가 전해 왔다고 들었는데 / 曾聞巨室傳三姓
좋은 명원에 우뚝 솟은 누각을 다시 보네 / 更看名園聳一樓
이곳을 먼저 점거한 주인이 / 却羨主翁先據了
세상 밖에 한가한 자취 부러워라 / 翛然物外任閒遊
창랑정(滄浪亭)
늙은 잣나무 삼삼히 사립문에 비치고 / 老栢森森綠暎扉
두세 촌락의 사람들 세상 소식 몰라 / 兩三村落世塵稀
백 년 옛 정자 산은 그대로 있어 / 百年古榭山無改
초여름 짙은 그늘로 나그네 찾아오네 / 四月濃陰客自歸
작은 길에는 물이 신발에 배고 / 蹊路間關水漸屐
솔 소리엔 바람이 옷을 날리네 / 岸松浙瀝風飄衣
바쁜 걸음 어찌 금강산 약속을 잊으랴 / 忙綠恐負蓬萊約
한가로이 옛 낚시터 찾을 겨를이 없었네 / 不暇閑尋舊釣磯
피금정(披襟亭)
옥녀봉 앞에 냇물이 가로질러 / 玉女峰前一水橫
푸른 들은 손바닥처럼 평평해 / 長提綠野掌如平
좋은 곳은 창랑정을 말했었는데 / 勝區但道滄浪好
금성에 이 정자 있음을 생각지 못했네 / 不意金城又此亭
장안사 동구(長安寺洞口)
단발령 지나니 걸음이 가벼워 / 斷髮嶺過步屧輕
장안사 입구에는 석양이 밝더라 / 長安洞口夕陽明
지방 사람들은 산수의 사람 좋아하며 / 居民不厭江山客
길 인도하는 소리 다투어 전하네 / 呼應爭傳路引聲
영원동(靈源洞)
일만 구릉 맑은 샘 길에 / 萬壑淸泉路
십 리 구름 속을 뚫고 왔네 / 行穿十里雲
특이하게 보이는 꽃도 많았고 / 襍花多異見
그윽한 새들 놀라는 소리 들었네 / 幽鳥駭初聞
벼슬한 사람이 과연 세상을 잊었는가 / 朝紳果忘世
돌 얼굴은 모여서 무리를 이루었네 / 石面簇成羣
기이한 구경 여기에 만족하니 / 奇觀於斯足
어찌 망군봉을 찾을 필요 있나 / 何須向望軍
영원암(靈源菴)의 현판 시를 차운함
벼랑은 깎아지른 듯 골짜기는 깊숙한데 / 蒼崖削立洞天幽
누가 노을을 보내 이곳을 감싸 주었는가 / 誰遣丹霞護別區
세상 밖에서 정을 말하니 반가운 사람 많고 / 論交物外多靑眼
좋은 지경에 와 보니 흰 머리가 부끄러워 / 寓迹靈源愧白頭
물을 따라가니 늦게 핀 꽃이 정말 좋고 / 沿流定好開花晩
벽을 지나며 조밀한 가지가 도리어 싫네 / 過壁還嫌著樹稠
하룻밤 선방 깨끗한 곳에 있으니 / 一席禪房高爽處
수없는 세상일 뜬구름 같네 / 百千世事等雲浮
헐성루(歇惺樓)에서 현판의 시를 차운함
구불구불 돌사다리는 공중에 걸렸는데 / 逶迤石棧掛晴空
철쭉꽃은 푸른 잎에 어울려 더욱 붉어라 / 躑躅相參綠葉紅
일만 이천 봉 끝이 없는 풍경에 / 萬二千峰無盡態
헐성루 아래 석양빛 가운데 있네 / 歇惺樓下夕陽中
만폭동(萬瀑洞)
골이 깊으니 완연 우물 속 하늘 / 洞深宛若井中天
만폭동 좋은 이름 세상에 전했구나 / 萬瀑嘉名出世傳
원화동 기이한 바위 바둑판이 그려지고 / 元化奇巖因畫局
진주담 맑은 물은 스스로 못이 되었네 / 眞珠活水自成淵
앞사람들이 얼마나 읊고 갔는가 / 品題幾度前人手
풍물은 아직도 예와 다름 없구나 / 風物猶依太古年
우습다 동쪽에서 온 천 리 나그네여 / 堪笑東來千里客
쇠잔한 오십 나이에 신선 구한다네 / 頹齡五十始求仙
보덕굴(普德窟)
서른 다섯 폭포 거슬러 돌아가니 / 三五瀑潭沿溯回
백 척의 구리 기둥 산에 의지했네 / 銅欞百尺倚山開
오르고 또 올라라 허공까지 / 躋攀寸寸憑虛地
날리는 옷소매는 학을 탄 것 같네 / 風袂輕如馭鶴來
금강수(金剛水)
금과도 바꾸지 않을 샘물 하나 / 一泉金不換
비우고 가서 채워 오는 사람들 / 虛往實歸人
경장음이란 말 믿을 만하고 / 信矣瓊漿飮
● 경장(瓊漿) : 음료(飮料)로 아주 맛있는 것이라 한다.
《초사(楚辭)》 송옥(宋玉)의 초혼(招魂)에 “화려한 술잔 이미 베풀어졌는데 경장도 있네
[華酌旣陳 有瓊漿些]” 하였다.
국미춘이란 것이 우습구나 / 彼哉麴米春
● 국미춘(麴米春) : 술 이름. 《주소사(酒小史)》에 ‘운안(雲安)의 국미주(麯米酒)’라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에, “이 술 한 잔을 마시면 곧 취한다.” 하였다.
폐부만 어찌 맑게 하리오 / 豈徒淸肺腑
정신까지 상쾌하여지네 / 亦可爽精神
각자가 양대로 마시면 / 各自充其量
세상 물욕은 모두 없어지리 / 蕩然掃六塵
중향성(衆香城)
겹겹으로 솟은 돌은 하늘에 꼽혀 있는 듯 / 重重石勢揷天長
만 년을 지나도 변치 않은 옥 같은 눈빛 / 萬劫常含玉雪光
누가 알리 이 산속에 가장 좋은 경치는 / 須識一山中最景
마하연 북쪽에 중향성 둘린 것을 / 摩訶衍北繞城香
비로봉(毗盧峰)
금강산 제일봉 생각이야 오래했지만 / 準擬金剛最屹峯
속세 인연 여기 올 걸 생각조차 못했네 / 俗綠未料的源逢
사방으로 뻗친 가지 본근에 의지했고 / 蔓延枝葉依根本
둘러싼 잔 봉우리 주봉을 쳐다보네 / 羅立兒孫仰祖宗
북두칠성이 지척에서 굽어보는 듯 / 北斗七星臨咫尺
동쪽 바다 만 리가 가슴을 씻어 주네 / 東溟萬里蕩心胸
붉은 놀 푸른 잣나무 그늘진 곳에 / 丹霞翠栢交陰處
높은 아취 참으로 신선을 따르는 듯 / 逸趣眞如羽客從
안문현(鴈門峴)
돌다리 오르니 구름이 신에서 나오고 / 陟磴雲生屐
숲을 헤치니 이슬이 옷에 떨어진다 / 披林露滴衣
높고 낮은 산은 북으로 향했고 / 高低山北拱
멀고 가까운 물은 동으로 흐르네 / 遠近水東歸
풍광이 만족스러워 절로 좋아하여 / 自愛風光足
세상일 드물다고 마다하지 않네 / 莫嫌世事稀
손으로 하늘을 만질 만한 곳이라 / 摩來象緯地
자못 신선을 끼고 나는 것 같네 / 殆若挾仙飛
효운동(曉雲洞)
새벽 구름 사라진 곳에 길이 열리니 / 曉雲收處路微開
끊어진 골 폭포 소리 땅을 움직이네 / 絶壑長川動地來
옛날 떠난 구룡이 가까이 있는 듯하여 / 前去九龍知近在
한 걸음 두 걸음 저절로 빨라만지네 / 行行筇屐十分催
선담(船潭)
천연으로 배처럼 되고 우연이 아닐세 / 天造船形不偶然
예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 끌어 왔던가 / 古來能有幾人牽
폭포의 물 구슬 일만 섬 담을 곳 없어 / 瀑珠萬斛無容載
무단히 길가에 버려두었나 / 棄置尋常路一邊
해금강(海金剛)
한없는 금강산을 또 여기서 찾으리 / 不盡金剛這處尋
뱃노래 두어 곡이 번뇌를 씻어 주네 / 櫂歌數曲散煩襟
열흘간 산을 오르니 다리가 피곤한데 / 一旬勞攘登山脚
만 리에 바다 보는 마음 통쾌하구나 / 萬里通明觀海心
먼 길에 마음 아는 사람 없다더니 / 曾謂天涯知己少
우연히 만난 주인 인정 깊고 깊어 / 偶逢地主屬情深
석양 길에 술과 고기 푸짐하여 / 打魚沽酒斜陽路
천 리의 어버이 생각하니 슬퍼라 / 千里懷親慷慨吟
사선정(四仙亭)에서 현판 시를 차운함
바다에 들어가길 반평생 경영했는데 / 半世經營入海舟
냇물과 산은 구불구불 길은 길기도 하네 / 溪山百折路悠悠
사선정과 삼일포가 어디에 있는가 / 四仙三日知何處
포구 정자에 비친 달빛 가없는 가을이네 / 浦月亭雲不盡秋
만세루(萬歲樓)에서 매죽헌(梅竹軒) 시를 차운하여 중 응명(應溟)과 같이 지음
신계에 절 지은 지 몇 해나 되었던가 / 寺闢新溪閱幾霜
여기서 설법하는 도인은 소년이로세 / 道人說法屬年芳
기나긴 나그네 길엔 친구가 드물더니 / 爲客長程稀伴侶
그대 만난 오늘에는 동행이 좋았다네 / 對君一榻做班行
산은 하늘에 솟아 올라 떨어질 것만 같고 / 山聳雲霄危欲墮
눈 덮인 골에 있는 누각 서늘한 기운 생기네 / 樓當雪壑凛生凉
어여뻐라 고금으로 이곳에 오는 사람들 / 堪憐今古來過地
태반이나 고심하여 부처에 향을 피우네 / 太半心勞供佛香
응명(應溟)과 같이 보운암(普雲菴)에 오름
두세 나그네 석양을 따라오니 / 兩三客趂夕陽來
고상한 그대 모습에 눈이 열리네 / 淸雅如君眼忽開
한 방의 도서는 법계를 갈무리하고 / 一室圖書藏法界
천추의 의발은 영대에 의탁했네 / 千秋衣鉢託靈臺
신계의 어채와 사람은 예와 같은데 / 新溪魚菜人猶古
법당의 향등은 해가 몇 번 돌았을까 / 龍殿香燈歲幾回
참된 이치는 분명하여 둘이 없는 것이니 / 至理分明無二道
어찌 모든 일을 허무에만 붙이는가 / 胡將萬事付塵灰
보낸 운자에 의하여 다시 응명(應溟)에게 주다
높은 나무로 옮긴 새는 감상이 깊어 / 谷鳥遷喬興感多
아름다운 울음 소리 맑고 듣기 좋네 / 嚶其鳴矣轉淸和
팔만 장경을 누가 전해 주었던가 / 經藏八萬誰傳授
삼천 세계를 스스로 깨우쳐 노래하네 / 界大三千自寤歌
젊은 나이 학문을 의론하기 좋고 / 論學堪憐年政富
마음을 말하니 해가 저무는 줄 모르네 / 話心不覺日將斜
그러나 빨리 실지로 돌아오게 / 第冝實地回頭早
이생 다시 얻기란 쉽지 않다네 / 難再此生能幾何
만물초(萬物草)
낭떠러지 비탈길 갈수록 가파른데 / 懸崖仄足路經幽
돌아보니 꼭 하늘에 오른 것 같네 / 回首依然上玉樓
기이한 금수들은 형체가 같지 않고 / 奇獸珍禽無定體
신선과 부처는 그 목적이 같지 않네 / 羽仙金佛不齊頭
조물주가 많은 공을 들인지 알겠어라 / 乃知造物功多費
오는 사람들을 마음껏 놀게 하네 / 能使來人意盡遊
제일 사랑스럽다 맑은 석양 나절에 / 最愛塵淸斜日外
높고 높은 봉우리에 덮인 눈들이 / 崢嶸雪色亂峰稠
구룡동(九龍洞)
이름난 곳은 꼭 귀신이 아낀 것 같아 / 名區自若鬼神慳
두루 보니 유자휴ㆍ한퇴지 그 누구더냐 / 歷覽於今孰柳韓
쌍봉폭은 백 장의 흰 비단을 드리우고 / 百丈練垂雙鳳瀑
구룡탄은 일만 우레가 소리치네 / 萬車雷吼九龍灘
천연스러운 형색은 보기 쉬우나 / 天然形色看常易
변화 많은 풍운은 그리기 어려워라 / 變態風雲畵亦難
다만 세속 사람 생각없이 올까 저어해 / 却恐塵人無慮到
해문 십리를 산들이 겹쳐 줄지어 막았네 / 海門十里列重巒
옥류동(玉流洞)
넓은 못에 새롭게 비가 내리니 / 潭濶新添雨
바람 없어도 제 스스로 차갑구나 / 無風也自寒
참으로 신선 세계에 앉은 듯 / 眞如仙界坐
다시 그림 속을 보는 듯하네 / 翻訝畵中看
기울어진 돌을 누가 먼저 오르는가 / 側石登誰捷
위태한 다리는 바라보기도 어려워라 / 危橋望亦難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깨끗하여 / 一邦斯潔淨
돌아보니 서울이 한탄스럽네 / 回首歎長安
비봉폭(飛鳳瀑)
봉황이 여산에 들어간 뒤 찾을 길 없는데 / 飛入廬山不可尋
개중에 서른 여섯 봉우리가 스스로 소리하네 / 箇中六六自然音
원래 고상한 생활 일반 새와는 달라 / 本來棲息殊凡鳥
항상 구름 밖 천 길 마음에 살고 있네 / 雲表展來千仞心
금란굴(金蘭窟)
금란굴에 와 보니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데 / 行到金蘭畵莫容
굴 속에 붉은빛은 어떻게 된 일인지 / 胡爲窟有放光紅
십주 세계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나 / 十洲世界隨形異
사철 풍연은 여기저기가 모두 같네 / 四序風烟滿地同
돌은 진편에 응하여 바다 밖으로 달리고 / 石矗秦鞭驅海外
● 진편(秦鞭) : 채찍으로 돌을 때려 옮겼다는 진 시황(秦始皇)의 고사.
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에 나가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다.
그러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산은 우부에 연하여 용문산을 뚫었구나 / 巒連禹斧鑿龍中
● 우부(禹斧) : 우(禹)가 천하의 하천(河川)을 개척할 때 용문산(龍門山)을 도끼로 끊었다 하여
우부(禹斧) 또는 우착(禹鑿)이라 한다. 《淮南子》
시속 사람은 자체가 굳음을 알지 못하고 / 時人不識堅頑保
다만 기세의 웅장한 것만 자랑하고 있네 / 指點虛誇氣勢雄
운(韻)에 의하여 고저(高底) 이우(李友)에게 주다
비바람 사락사락 여관은 깊어 가는데 / 風雨蕭蕭一館深
밤중에 술을 대하니 마음이 화평해라 / 夜樽對酌太和襟
천 년의 바다를 찾는 사람은 예와 같고 / 千年濱海人猶古
사월이라 산 구경 나그네 멀리서 왔구나 / 四月看山客遠臨
물외에서 노래하니 참으로 방랑의 자취네만 / 物外嘯歌眞浪迹
일변에 있는 집과 나라 언제나 관심이 되네 / 日邊家國每關心
어찌 알까 꿈같이 잠깐 지나가는 이 땅에 / 那知暫宿蘧蘧地
수없이 좋은 시를 어찌 생각했으랴 / 滿軸瓊章遇賞音
원산 남산(元山南山)
생각이 있어 이른 아침에 왔건만 / 有心筇屐詰朝來
슬프다 난리 소식 온 땅에 가득하네 / 滿目腥塵足一哀
하늘은 사심이 없어 고르게 비를 내리는데 / 天自無私均雨露
사람은 무슨 일로 제 곳을 잃었는가 / 人何失所幻池臺
변방에 멀리 부는 바람 노래 세 곡조요 / 塞風千里歌三闋
포구에 달빛 깊은 밤엔 술이 두어 잔 / 浦月深更酒數杯
우리 강산이 이러한 수치를 당하니 / 大地江山羞至此
오늘날 누가 변방 지킬 인재일까 / 當今誰是禦邊才
표표연정(飄飄然亭)
현판을 만지면서 짐짓 지지한데 / 摩挲扁額故遲遲
봉옹이 돌아가던 때를 추억해 보네 / 回憶蓬翁羽化時
● 봉옹(蓬翁) : 양사언(楊士彦)을 가리킨다. 그의 호가 봉래이다.
그는 회양 군수(淮陽郡守)로 있으면서 금강산을 자주 다녔다.
무궁한 앞길을 그대는 재촉지 말라 / 不盡前程君莫促
이렇게 좋은 집에 다시 오기 어려우리 / 團圓此閣更難期
가학루(駕鶴樓)
포로와 봉선이 지나간 누각에 / 圃老蓬仙過去樓
● 포로(圃老)와 봉선(蓬仙) : 포로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봉선은 양사언을 이름.
석양의 먼 나그네 짐짓 주춤거리네 / 斜陽遠客故遲留
성을 두른 산은 첩첩 높고 낮으며 / 高低疊嶂連城繞
지세를 안고 흐르는 물 길기도 하네 / 環抱長川護境流
학을 타고 속된 세상 잊고 싶고 / 駕鶴欲忘烟火世
사람을 생각하니 가을이 슬프구나 / 懷人自感水雲秋
말미 얻은 관리들은 무슨 마음으로 / 何心邊吏乘餘暇
나를 맞아 부질없이 누각에 쉬게 하나 / 邀我空堂恁地休
석왕사(釋王寺)
짧은 낭떠러지 겨우 문 하나 통하고 / 短崖如束劣通門
건너 마을 종소리 구름 밖에 들리네 / 雲外鍾聲隔一村
방초가 꽃에 섞이니 봄이 다하지 않고 / 芳草間花春不盡
무성한 솔숲이 해를 가려 낮인데도 어둡구나 / 亂松蔽日晝常昏
임금 은혜 입은 지 세 조정을 거쳤는데 / 恩綸偏被三朝眷
부처의 보좌는 만겁이 지나도 편안했네 / 寶座因安萬刧魂
백발의 한가한 중도 나라 근심하여 / 白髮閒僧亦憂國
때로는 불평한 의론에 손바닥을 치네 / 有時抵掌不平論
분수령(分水嶺)
조물주도 이곳에 이르러 깊이 생각하였나 / 化工到此揣摩深
일정한 방향에 조금도 변동하지 않았네 / 一定方維自不侵
동으로 나간 샘물이 두 경계를 이루고 / 東出泉源分二界
남을 향한 산맥은 중심을 표했어라 / 南奔山脉露中心
잠시 놀러와 강산의 맛을 다 알 수 있으랴 / 小遊豈盡江湖趣
좋은 붓으로 때로 오언 칠언 시를 쓰네 / 彩筆時揮五七吟
아쉬워라 살처럼 곧은 국경선 길에 / 堪惜關河如矢道
짐 실은 소와 말을 금하는 사람 없느뇨 / 馬牛駄載蕩邊禁
요동백 묘(遼東伯廟)
● 요동백(遼東伯) : 광해군 때 명 나라가 건주위(建州衛)를 칠 때 원병(援兵)으로 갔던 김응하(金應河)를 가리킨다.
그가 전사하자, 명 신종(明神宗)은 그에게 요동백을 추봉했다.
큰 의리는 중국에 진동하였고 / 大義擎天動夏夷
영웅의 모습 산악 정기에서 났더라 / 稟精山嶽獨英姿
춘추필법 본받은 화양의 붓이 / 誰知褒袞華陽筆
● 화양(華陽) : 송시열(宋時烈)을 뜻한다. 송시열이 말년에 청주(淸州)의 화양동에 은거했다.
긴 밤에 태양 같음을 누가 알리 / 劈破重陰閉九時
고석정(高石亭)
해산의 남은 흥취 다시 어디서 찾으리 / 海山餘趣更何求
동주의 고석정이 그윽한 별천지라네 / 高石東州別界幽
여기는 현포라 말할 수 있으니 / 只此堪誇涉玄圃
● 현포(玄圃) : 곤륜산(崑崙山) 위에 있다는 신선(神仙)이 살고 있던 곳.
무단히 단구 찾으려 수고하랴 / 亦曾多事訪丹丘
● 단구(丹丘) : 《초사(楚辭)》에 “단구는 신선들이 노는 곳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 고을이다.” 했다.
시절이 어렵다고 가벼이 물러남은 옳지 않고 / 時艱不合思輕退
몸 건강하니 먼 여행이 가장 좋더라 / 身健偏宜賦壯遊
어버이는 늙어 석양이 가까워져 / 最是親堂西日迫
여울에 내리는 배처럼 돌아가고파 / 歸心爭駛下灘舟
순담(蓴潭)
녹야의 당년에 의미가 맑았건만 / 綠野當年意味淸
나그네 이르니 산새만 울고 있네 / 客來只有谷禽鳴
뜬 구름 흐르는 물 아득한 속에 / 浮雲流水迷茫地
순담을 캐는 마음 한이 없구나 / 采采潭蓴不盡情
삼부연(三釜淵)
선원을 두루 다닐제 배는 소용없네 / 踏遍仙源不假船
장관을 모두 구경함은 하늘이 주었지 / 窮途壯觀亦由天
구룡폭포 아래서는 나마저 잊었고 / 九龍瀑下形俱忘
삼부담에서는 더욱 흥겨웠어라 / 三釜潭中興又牽
벼랑에 오르니 발 붙이기 어렵고 / 攀去緣崖難付屐
풀밭에 앉으니 좋은 자리를 편 듯 / 坐來班草更成筵
문득 연로의 청고한 절의에 탄식하노라니 / 却歎淵老淸高節
● 연로(淵老) : 김창흡(金昌翕)을 지칭한다.
그의 호가 삼연(三淵). 그는 삼부연(三釜淵)의 경치를 좋아하여 자신의 호를 삼연이라 했다.
시내 북쪽에 아직도 옛 샘이 있다네 / 溪北猶留舊飮泉
용화(龍華)
옛사람은 누구와 이곳을 열었던가 / 昔人破僻與誰謀
한 줄기 물 근원이 십 리에 깊숙하지 / 一派溪源十里幽
골에 연하는 가득하여 한가롭게 살려네 / 滿壑烟霞閑計活
봄날 화조를 감상하니 풍류가 예스럽지 / 賞春花鳥舊風流
부질없는 인생 장주의 꿈이 회상되고 / 浮緣多感莊周夢
● 장주(莊周)의 꿈 : 호접몽(胡蝶夢)과 같은 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 다녀
자신이나 세상일을 완전히 잊었다고 하였다. 《莊子 齊物論》
세상일은 송옥의 가을이 더욱 슬프지 / 時事偏悲宋玉秋
● 송옥(宋玉)의 가을 : 송옥(宋玉)은 전국(戰國) 때 초(楚) 나라 사람으로 굴원(屈原)의 제자.
사부(詞賦)에 능하여 비추부(悲秋賦)를 지었으므로 가을을 말할 때 흔히 송옥을 일컫는다.
떠도는 자취 산수의 흥취도 많았으니 / 浪迹曾誇仁智趣
즐거운 이때 험하다고 어찌 사양하리 / 何辭夷險盡情遊
양문 노중(梁文路中)
산수에 놀 언약이 이루어져서 / 幸遂登臨約
옛날 건넜던 다리 다시 찾았네 / 還尋舊渡橋
고향엔 화조도 가까이 있을텐데 / 故鄕花鳥近
선경은 해산에 멀리 있다네 / 仙境海山遙
손 잡고 먼 길 동행했더니 / 携手同千里
이별하는 때가 되니 슬프구나 / 分驂悵一朝
평소에 멀리 유람하는 뜻이 / 平生弧矢志
오늘에 매우 만족하여라 / 到此十分饒
[출처]면암집(勉庵集) 제1권 詩 - 4월 3일에 여러 친구와 금강산(金剛山)을 향하여 떠남| 작성자어이무사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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