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년월일 -1942년 3월26일
● 출 생 지 -서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 1973-2001 : 개인전 11회 개최
● 1981년 국전 추천 작가
▶ 수상
● 1963-1980 : 국전입선 12회, 특선3회
● 1978 :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중앙일보사 주최)
● 1980 : 국전 대상 수상
● 1980 :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 (중앙일보사 주최)
● 1994 : 제5회 석주 미술상 수상
▶ 저서
「한국근대동양화연구」/ 미술문화원
「이브의 보리밭」/ 나남
▶ 현재 :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보리밭은 10년이상 그렸다.
보리밭과 누드가 만난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과거의 누드는 여체를 작품의 대상물로서 보았지 性의 여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적나라한 포즈를 그렸더라도 관능적이지 않았고 차가웠다. 나 자신이 여체를 관능적인 감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이브의 보리밭은 우리겨레의 보리밭 에로티시즘을 전제로해서 그린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보리밭을 여러점 그렸다. 한국적 자연서정에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는
보리밭은 화가로서 어려웠던 한시기를 극복하게 해준 테마였다.
보리밭 화가라는 말이 나를 쉽게 이해시키기도 했다. 이숙자라면 잘 모르는 사람도 보리밭 그리는 이숙자라면 나를 기억할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보리밭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무한할정도로 받아들이는 보리밭 작업은 내 직성에 딱 맞는 그런작업이었다.
나는 과다한 작업량에 의해서 육체적고통와 정신적 피로의 극치를 느낄때 일종의 만족감에 의한 쾌감의 극치를 동시에 느껴왔었다.
나는 손에 붓을 들고 있는한에는 마음의 한없는 희열과 만족감에 잠기곤한다.
그리고 보리수염 하나하나에 개성이 담겨지어 그 개개의 수염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그리느라고 애쓰다보면 또 개성과 함께 보리수염 전체의 조화가 귀결점이므로 조화를
이루게 하기위해 여러가지 배려를 세심하게 해야한다. 좀 눈에띄게 굵게 그어진 수염은 세필로 반을 쪼개고 하얀색의 수염이 우연히 나란하게 두개가 그어져 눈에 그부분이 유독 하얗게보이면 그중 한개의 수염은 다른색으로 바꾼다.
또 속도감이 약해서 수염의 기(氣)가 살지않은 수염은 속도감을 주어 기를 다시 살리기도 한다. 또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극세필로 비단결같이 섬세한 수염을 그릴때도 있는가 하면 힘차고 굵고 다이나믹한 수염을 그릴때도 있다.
이 보리수염의 역할이 보리밭 작업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러가지 색깔-빨강, 노랑,
파랑, 보라, 연두, 청록, 초록, 백록, 흰색....-이런 색들의 수염을 여러가지 굵기의 여러가지 속도변화의, 여러각도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그리느라고 밤이오는시간 즉 자야할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어서빨리 이밤이 지나고 아침이되면 보리수염을 또 그릴 수
있을텐데 하는 그런 기쁨속에서 보리수염을 그렸다.
지금 이 보리수염을 그리는 묘미는 여체의 꼬불꼬불한 체모를 그릴때나 이브의 머리카락을 한올씩 그릴때도 비슷한 기쁨으로 그렸다. 머리카락을 한올씩그리는 재미에
몰두하다가 밤을 새우기도했다.
전에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을 나타내 보라는 이야기를 여러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국문학을 하시는 홍교수는「비단 속꼿(옷)입고 보리밭 매러간다」「보리밭 머리만
지키면 일년농사가 거뜬하다」는 옛 속담을 들려주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봄이되면 보리밭에 숨어서 로맨스를 즐겼고 어쩌다 남의 눈에 띄기라도하면 소문날것이 두려워 곡식을 퍼다주고 입을 막았다는 말에서 연유된 속담이라며 그러한 에로티시즘도
같이 표현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러자 옆에있던 P씨가 보리밭 한가운데를 싹뭉개지게 그리면 그런그림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웃음바다가 된적이 있었다.
보리밭정서가 보리고개를 위시해서 가난이나 한 또는 한국적인 자연정서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에로티시즘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후 몇 년이 지났다.
얼마전 우연히 시인 유선생과 대화중 보리밭은 그만그리려고 한다고 했더니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가져보기를 권했다. 그때서야 그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이 내 가슴 깊이 들어왔고 감동이 왔다
그것은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로 나를 작품속에 몰입시켰다. 하루 17시간의 작업시간을 지탱할 수 있었다. 외부의 방해가 없는 한은 먹고자고 작업만했다.차를 타고 집 현관에서 화실 현관까지 홨다갔다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느날 거리에 나서니 대지를 두발로 밟고 섰다는 감회가 서렸고 땅이 부드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이브의 뎃생이 한점씩 완료되는 경이(내게 있어서는 놀라운 속도였다)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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