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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버님의 대갈님 / 전상국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06. 8. 9.
    아버님의 대갈님 / 전상국 어느 날 친구 집에 전화를 걸자 그 부인이 받았다. 대충 안부를 묻고 친구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 부인의 대답이 내 귀에 거슬렸다. "지금 안 계시는데요." 분명히 내가 자기 남편의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을 높여 말 하는 것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뿐이 아니고 여러 번 그런 일을 겪게 되면서 은근히 부아가 났다. 친구에게 그 일을 농하는 말로 일깨워 줬더니 그 친구 역시 우스개 소리로 부드럽게 내 공격을 피했다. 부인이 자기를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능청이었다. 제자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도 같은 경우를 당한 일이 있다. 내가 분명 자기 남편의 선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인은 아무개 씨가 지금 집에 안 계신다고 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온 젊은 주부들 중에도 자기 남편의 일을 얘기하면서 늦게 들어오신다 느니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요, 등의 주체 높임법을 쓰는 경우 가 종종 있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반말지거리를 하면서도 시청자들 앞 에서 자기 남편을 그런 식으로 높이고 있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언젠가 집사람이 친구들 모임에 다녀와 하던 얘기도 그랬다. 친구 하나는 자기 남편을 얘기할 때마다 우리 어른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신다 등등의 높임말을 계속 쓰더란 것이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 남편 자랑을 하는 것도 푼수인데 그 높임말로 해서 그 분위기가 많이 썰렁했는데도 본인은 전연 그것을 모르고 있더란 얘기다. 이렇게 남들 앞에서 존댓말을 잘못 쓰는 것 은 대부분 자기 나름으로 예의와 격식을 잘 갖추려다 생기게 되는 실수일 경우가 흔하다. 갓 시집온 새댁이 시아버지 앞에서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올라 앉으 셨습니다.' 라고 했다는 우스개 말도 존댓말을 너무 의식하다 생긴 일일 것이다. 가다(가시다) 먹다(잡수시다)와 달리 '있다'의 높임말은 '있으시다'와 계 시다' 두 가지인데 실제 언어생활에서 이를 잘못 쓰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학생 하나가 찾아와 '선생님, 지금 시간 좀 계십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 그런 예다. 주체 높임의 어미 '-시-를 잘못 써서 할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았다는 얘기 도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어요.' 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아버지가 돌아왔어요.'로 해야 맞기 때문이다. 어떻든 우리말은 높임법이 매우 발달한 언어이다. 이것은 언어를 사용함 에 있어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따 라서 우리말은 단순히 의사 소통을 넘어서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관계의 첫 번째 조건이 되기도 한다. 말이나 문장 속의 주체를 높이고 낮추기, 또한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떠 한 위치의 사람인가에 따라 그 높임과 낮춤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따른 언어형식의 변화를 높임법 혹은 경어법이라 한다. 어떻든 우리말에 높임법이 발달한 것은 서구 사람들과 달리 우리 나라 사 람들이 사회적 지위 등의 위아래 혹은 친분 관계의 깊이 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인관관계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 경하는 자세를 그 언어생활에서부터 가르쳐온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 우리말의 특징 중의 하나인 높임법이 무너져가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바뀐 가치관에 따라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도 달라 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 '교수님, 수고하십시 오.'란 말을 인사말을 남긴다. 선생님 대신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그 거리 감도 그렇지만 어떤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는 말인, 웃어른 의 행동에 대해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수고하시란' 란 말을 듣는 일이 그 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학생들이 잘 모르고 쓰는 말이라 틈틈이 일 깨워주고 있긴 하지만 워낙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 그 흐 름을 거슬리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요즘 학생들이 쓰는 문장에는 3인칭 대명사를 써서는 곤란한 자리에도 거 침없이 쓰고 있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김광년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부터 그 이름 때문에 아이들한테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외국말을 번역할 때 흔히 사용하는 3인칭 대명사가 우리의 언어 관습을 깨고 쳐들어온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문장을 쓴 학생이 말로 그 렇게 표현했다면 듣는 사람은 얼마나 거북할 것인가. '그녀는'이 '그년은' 으로 들렸을 것이니 말이다. 내가 굳이 잘못 쓰이고 있는 말의 높임법 등 잘못된 언어 문제를 들고 나 온 것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의 서운함이 컸기 때문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 지 않다. 내 마음이 서운했다는 것은 나를 향해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람 됨 됨이를 그다지 높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수야, 밥 먹어라. 정수, 밥 먹게. 여러분, 식사들 하시지요. 할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상대 높임의 격식인 해라체, 하게체, 하오 체,합쇼체만 제대로 사용해도 우리의 언어생활은 한결 품위가 있고 밝아질 것이다. 강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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