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목향 정광옥 한글서예가
  • 목향 정광옥 서예가
우리의 시조

덕온공주와 윤의선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2. 12. 11.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위동 김진흥가 長位洞 金鎭興家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5호
지정연월일
:
1977년 9월 5일
시 대
:
고종 2년(1865)으로 추정
규모·양식
:
대지 759평, 건평 107평, 팔작지붕
재 료
:
석조 기단, 목조
소 유 자
:
사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76-59 (진흥길 7-8)
장위동 김진흥가는 순조의 제3녀 덕온공주(德溫公主)의 남편인 부마도위(駙馬都尉)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과 그의 양자 윤용구(尹用求)가 살던 저택이었다. 윤용구는 고종 8년(1871)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ㆍ병조판서를 거쳐 1895년 을미개혁 이후 관직을 거부하고, 이곳 장위산 밑에 숨어서 조용히 살았다. 그는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특히 금석문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 가옥은 1998년 12월 소유주인 김진흥이 불교재단에 기증함으로써 지금은 '진흥선원'이라는 절이 되어, 안채는 극락보전으로 바뀌고 대청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사랑채 대청의 상량문에 적힌 을축년(乙丑年)을 근거로 고종 2년(1865)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옥은 넓은 터에 역(逆)'ㄴ'자형과 '口'자형의 중정(中庭)을 이루는 두 건물이 엇비스듬하게 합쳐져 있는 형식의 배치를 하였다. 역'ㄴ'자형 중정을 가진 건물 전면에는 'ㄷ'자형 중문간 행랑채가 동서로 길게 위치하였고, 그 안쪽으로 'ㄷ'자형의 안채가 남향하여 있다. 역'ㄴ'자형 중정이 있는 건물 오른쪽으로 '口'자형의 중정을 가진 건물이 있는데, 전면에 역'ㄴ'자형 사랑채가 남향하여 자리잡았고, 뒷면에 'ㄷ'자형 별채가 남향하고 있다. 안채 서쪽으로는 동향한 '一'자형 별당채가 있고, 안채 뒤로는 후원이 가꾸어졌으며, 그 서쪽으로 장독대가 있다.
바깥마당을 들어서면 마당 전면 높은 터 왼쪽에 중문간 행랑채가 마주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채 사랑마당을 둘러싼 담이 있다. 중문간 행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서에서 동으로 광 1칸(현재 화장실), 광 2칸, 중대문간 1칸, 광 2칸, 방 1칸(현재 목욕탕)이 자리잡고 있다.
중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에 닿는다. 중앙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크기의 안대청이 남향하여 있고, 그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 반 크기의 건넌방이 있다. 안대청의 서쪽에는 1칸 반폭으로 1칸의 윗방, 2칸의 안방이 자리잡고 있고, 이 안방의 남쪽으로 1칸 반폭으로 부엌 2칸, 찬마루 1칸 반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러한 실(室)의 배치는 경기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형이다. 건넌방 남쪽으로는 함실아궁이 부엌 1칸, 장마루 1칸, 그리고 방이 있는데, 이 방은 동쪽으로 돌출한 사랑채의 침방이다.
안채는 장대석 바른층 쌓기 두벌대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주춧돌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집 구조로 되었다. 가구(架構)는 5량이고,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안마당에는 우물이 있다.
안채 서쪽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별당채가 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이 별당채는 원래 '산호벽루(珊瑚碧樓)'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진 건물이다. 산호벽루는 두벌대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중앙을 우물천장으로 만들었으며,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사랑마당 남쪽과 서쪽에 자리잡은 일각대문으로 출입하고, 또 안채 건넌방 남측에 자리한 사랑채 침방과도 연이어져 있다. 사랑채 침방은 그 남쪽의 중문간 광채와 연이어져 있고, 그 동쪽으로는 정면 2칸, 측면 1 크기의 대청이 있다. 대청 동쪽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 반 크기의 작은사랑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침방 2칸이 있다. 이 작은사랑의 북쪽으로는 또 다른 별채가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는 장대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집 구조이며, 5량 가구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랑채 중앙에는 '南寧齋(남녕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이 가옥 사랑채 앞의 장대석으로 조성된 2단 석축과 후원의 석축은 한국 고유의 조형미를 잘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꺾이며 얽혀지는 외부공간의 변화가 주목된다.

'우리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온공주의복  (0) 2012.12.11
윤백영  (0) 2012.12.11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0) 2012.12.11
날아다니는 동시 영문으로 번역한 동시작가 정현자  (0) 2012.12.05
사친(思親) / 신사임당   (0) 2012.04.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