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목향 정광옥 한글서예가
  • 목향 정광옥 서예가
우리의 시조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2. 12. 11.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순종의 숨겨진 손자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한'의 딸인 이설은 그 자신도 어린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실제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누구이며,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순조의 막내딸 덕온공주, 마지막 왕녀는 순종의 막내딸 덕혜옹주다.

조선은 왕의 적녀를 '공주'로, 왕의 서녀를 '옹주'로 봉했다.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1822년 출생한 덕온공주는 1837년 16살 때 윤의선과 결혼했지만 7년 뒤인 1844년 2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고종은 명성황후 민씨 외에 귀비 엄씨, 귀인 이씨, 귀인 장씨, 소의 이씨, 귀인 정씨, 귀인 양씨 등 총 7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들을 뒀지만 모두 단명했다.

고종은 명성황후와의 사이에서 장녀인 아지공주를 뒀고 귀인들과의 사이에서 세 옹주를 뒀지만 귀인 양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를 제외한 딸 세 명은 모두 정식으로 봉해지기 전에 사망했다. 정식으로 봉해진 최후의 왕녀는 '덕혜옹주'인 셈이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인 1912년 덕수궁에서 출생한 덕혜옹주는 고종과 복녕당 귀인 양씨 사이에서 난 고명딸이다.

그녀는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왕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탐탁찮아했던 일본 총독부 때문에 9살이던 1921년까지 이름 없이 '복녕당 아기'라고 불려야 했다. 1919년에는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했다.

덕혜옹주는 1921년 5월4일 옹주로 봉해졌지만 곧바로 서울의 히노데(日出) 소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했다. 또 19살이었던 1931년 5월8일 쓰시마섬 도주인 소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해야 했다.

그녀는 1922년 8월18일 딸 마사에(정혜)를 낳았지만 출산 후 정신쇠약과 몽유병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1955년 마사에가 행방불명되면서 증상이 악화돼 1958년에 남편 소 다케유키에게 버림받고 도쿄 인근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덕혜옹주는 박정희 정권 당시였던 1962년 1월26일 오후 12시35분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에 돌아왔다. 이후 의민태자비 이방자 일가, 유모 변복동 여사와 함께 창덕궁에 기거하며 노환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21일 타계했다.

현존하는 고종의 직계 후손은 둘째아들인 의친왕의 후손들 뿐인데 의친왕은 정부인인 덕인당 김씨 등 10여명의 부인을 뒀고 이들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12남9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의친왕의 자손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황실재산 관리법'을 만들어 황실 소유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고, 6·25전쟁 피난길에 의친왕이 짐보따리를 도둑맞으면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마지막 황세손이었던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가 2005년 일본의 한 호텔에서 숨진 후 전주이씨 종약원은 2005년 영친왕 가계의 양자로 입적한 이원씨를 황실 후계자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이 약 1년 뒤 의친왕의 둘째딸 이해원씨를 여황(女皇)으로 추대하면서 현재는 왕손들 사이에서 '적통성'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해원씨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1936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남편 이승규씨와 결혼했지만 한국전쟁 때 남편이 강제 납북됐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

덕온공주의복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덕온공주의복(德溫公主衣服)
대한민국 대한민국중요민속문화재
지정번호 중요민속문화재 제211호
(1987년 2월 12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2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작시기 조선 제23대 왕(재위 1800~1834) 순조

덕온공주의복(德溫公主衣服)은 조선의 제23대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1822∼1844)의 옷이다. 덕온공주의 복식으로는 원삼ㆍ당의ㆍ장옷ㆍ삼회장저고리ㆍ누비저고리 등이 있는데, 이 옷은 공주가 혼인할 때 가지고 온 옷이다. 덕온공주의 유품은 1964년 12월 7일에 지정된 중요민속자료 제1호인 당의와 1987년 2월 12일 중요민속자료 제211호와 제212호로 지정된 덕온공주의 의복과 일괄 유물이 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2]

목차

 [숨기기

[편집] 전해오는 이야기

덕온공주순조 22년(1822) 6월 10일에 탄생하여, 헌종 3년(1837) 16세 되던 해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과 혼인하였다. 어머니는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이다. 위로 명온공주(明溫公主), 복온공주(福溫公主)라는 두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명온공주 위로 또 한 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아기 때 죽었다고 한다. 따라서 덕온공주가 순조의 셋째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넷째 딸이다.

헌종 10년(1844) 5월 24일헌종 계비의 간택일이어서 공주는 둘째 아기를 배어 무거운 몸인데도 불구하고 경사를 함께 하기 위하여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 들어가 식사를 같이 하였는데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은 것이 급체하여 죽었다. 다행히 죽기 전에 아기는 낳았으나 곧 아기는 죽고 창고지기(庫直)를 시켜 아기를 매장시킨 뒤 두어 시간 후 공주도 세상을 떴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일단 부마가 되면 상처를 하여도 재취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 후에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의 11대손인 윤용구(尹用求)가 남녕위 윤의선의 장자로 입양하였다. 이 의복들은 윤용구의 딸 윤백영이 보관하고 있있던 것으로 1960년대에 석주선(石宙善)이 인수하여 보관하던 중 소장 유물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편집] 유물 내용

유물의 원삼은 덕온공주가 1837년 남영위 윤의선에게 시집갈 때 대례복(大禮服)으로 입었던 원삼이다. 길이 164㎝, 화장 164㎝로 녹색 화문사(花紋紗)에 壽(수)자 금박이 옷 전체에 고루 찍혀있다. 소매 끝에는 붉은색ㆍ황색의 색동과 흰색의 한삼을 달았으며, 깃에는 2개의 은단추가 달려있다. 안감은 홍색이었으나 6.25 전쟁 때 없어졌다. 원삼은 겉감과 안감을 각각 독립된 옷으로 따로 만든 후, 겉과 안을 깃과 도련을 합하여 한벌 옷으로 입기도 하며, 대한제국 때의 궁중 원삼은 겉안감을 함께 붙여서 바느질하기도 했다. 덕온공주의 원삼은 1837년 공주의 길례(吉禮,공주나 왕자의 혼례를 말함)에 사용된 옷으로, 그 때까지도 겉감과 안감을 따로 바느질하였던 것 같다. 당시의 옷감이나 형태 외에도 바느질까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당의는 여름용 홑당의로, 녹색의 도류사(桃榴紗, 복숭아와 석류무늬가 있는 얇은 옷감)에 옷고름은 겉고름과 속고름 모두 자적색(紫赤色) 도류사로 만들었다. 당코깃에 좁은 소매이며, 소매 끝에 백색 명주 거들치가 달렸다. 옷전체에는 수壽(수)자와 福(복)자가 금박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3호의 당의와 매우 흡사한 모양이다.

장옷은 조선시대 중ㆍ후기에는 여성들의 외출복이었으나, 후기에 오면 내외용 쓰개로 바뀌는 옷이다. 덕온공주의 장옷은 길이 111㎝, 화장 69㎝, 품40㎝로 짙은 녹색 경광주(비단의 일종)에 세모시 안을 넣고, 깃은 자주색에 흰색 동정이 달리고, 소매는 좁고 길며, 겨드랑이 밑에는 자주색의 작은 삼각형 무가 달려있고, 소매 끝에는 백색의 명주 거들치가 달려있다. 옷고름은 겉고름에 붉은색과 다홍색의 2개가, 안고름은 붉은색으로 넓고 길게 달려있다.

저고리는 3점 모두 전체적인 형태는 같은 삼회장저고리이며, 깃은 당코깃이다. 1점은 두록색(豆綠色) 삼회장저고리이며, 나머지 2점은 누비 삼회장저고리로 바탕색은 다르지만, 회장감은 3점 모두 자주색이다. 삼회장 저고리는 겉감은 두록색 도류사(桃榴紗)에 자주색으로 깃과 고름, 견마기를 대었고, 소매 끝에는 흰색으로 거들치가 달려있다. 속고름은 다홍색이다. 저고리 위에는 당의에 있는 壽(수)자와 福(복)자 금박이 찍혀있다. 누비저고리 2점 또한 모두 삼회장저고리로 매우 곱게 누볐다. 1점은 옥색 설한단(雪寒緞)이고 속고름은 연한 분홍색으로 넣었고, 1점은 송화색(松花色) 도류사에 모사로 안을 넣었고, 속고름은 다홍색으로, 깃·고름·끝동·견마기는 자주색이다.[1][2] [3]

'우리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백영  (0) 2012.12.11
덕온공주와 윤의선  (0) 2012.12.11
날아다니는 동시 영문으로 번역한 동시작가 정현자  (0) 2012.12.05
사친(思親) / 신사임당   (0) 2012.04.25
사친(思親) / 신사임당   (0) 2012.04.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