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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조

[스크랩] 들메 구자송의 다산 ‘매화도’ 글씨 - 석야 신웅순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4. 1. 25.

들메 구자송의 다산 ‘매화도’ 글씨

 

 

 

 

신웅순 │시조시인ㆍ평론가ㆍ서예가, 중부대 교수

 

   비껴나온 가지에 멧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멧세는 한 가지에 몸을 포개앉아 있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부부는 먼 곳을 함께 바라보며 다정하게 살아아한다는 딸에 대한 애틋한 메시지였으리라. 다산이 시집간 외동딸의 행복을 위해 그린 하피첩 ‘매화병제도’ 시화이다.

   다산은 이 매조도 그림 밑에 한시 한 수를 쓰고 협서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산 정약용은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윤두서의 외손자이다.

 

가경 18년 계유(1813) 7월 14일. 열수 늙은이는 다산의 동암에서 쓴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산지 여러 해가 지났다. 홍부인이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부쳐왔다. 세월이 오래어, 붉은 빛이 바랬길래 이 를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었다. 그 나머지를 이용해서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 게 보낸다.

 

   다산의 강진 유배시절 아내가 편지와 함께 빛바랜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시집 올 때 붉고 선명했던 치마는 이제는 빛바랜 채 노년의 노을빛만 남았다. 뼈가 타는 다산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네 폭은 두 아들에게, 남은 치마는 가리개를 만들어 외동딸에게 보냈다. 아들, 딸에게 어버이의 은택을 이렇게라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아들, 딸에게 에둘러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 들메의 다산의「매화병제도」

 

   훨훨 나는 저 새가 우리집 매화가지에서 쉬고 있다. 매화 향기가 짙게 퍼졌기에 날아왔겠지. 거기 멈춰 살며 즐거운 가정을 이루거라. 꽃이 활짝 피었으니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리라. 그리 당부하고 있다.

   들메는 다산의 매화도시를 현대문 한글로 옮겨 자신만의 개성, 들메체로 썼다. 다산의 맑고 고결한 매화도 글씨와 들메의 깨끗하고 정갈한 글씨가 무언가 닮아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한문으로 하나는 한글로 매화도시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랴. 그윽한 매향과 묵향이 내 곁에서 오랫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다산을 어제 본 듯 200년 간의 긴 세월이 들메의 예술에서는 이렇게도 가깝게 느껴진다.

   필자는 몇 번 님의 글씨를 전시회에서 보았다. ‘참, 들메 선생님은 시를 잘 고르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현대시면 현대시, 한시면 한시 멋과 운치가 있는 시를 잘도 고르신다. 그것을 의미있는 여백으로, 예스러운 작품으로 처리, 멋지게 아름답게도 만들어내신다.

   필자는 님과는 몇 번 스쳐간 적은 있어도 차 한 잔 나누어 본 적은 없다. 차 한 잔 할 기회가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글씨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해서 그리 서운해할 것도 없다. 예술가는 작품으로써 모든 것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예술을 알아준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 나태주 시를 쓴 님의 서예 작품을 보았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 「시」일부

 

 

   이런 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다. 짧은 시이면서 읽기 쉽고 가슴에 다가오는 시였다. 누가 이 시를 작품으로 썼을까 궁금해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들메 구자송 서예가였다. 어떤 시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남도 좋아한다면 그 사람과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태주는 필자의 고향인 충남 서천 시인이다. 물론 필자와는 절친한 이웃 언덕 너머에 살았던 따뜻한 시인이다.

   그렇게해서 단 한번으로 님을 기억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묘하다. 무슨 일로 해서 영원히기억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자꾸만 잊혀지는 인연이 있다.

   필자에겐 들메의 몇 작품만을 감상했을 뿐이다. 그래도 님의 글씨를 읽고 싶었던 것은 님의 예술세계가 필자의 영혼을 적시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님의 많은 자료들을 접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몇 작품이라도 이번 기회에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로선 큰 행운이다.

   윤두서는 필자의 팔대조 조선 후기 시인 신광수의 장인이기도 하다. 다산은 윤두서의 외손자이니 필자와도 그런 인연이 있는 분이시다.

   스쳐간 그 많은 작품들 중 기억할 만한 작품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을까. 글씨를 잘 쓴다해도 작품 내용이 글씨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그 작품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까. 님의 작품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님의 그윽한 향기가 언제나 작품에 남아 있지 않은가. 진정한 예술인과 예술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필자만의 행운은 아니리라.

 

『월간 서예문화』(도서출판 단청,2012.6),40쪽.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신웅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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