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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얼 선양

허난설헌 사시사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4. 12. 27.

허난설헌(초희) / 사시사(四時詞)

 

(春)


뜨락이 고요한데 봄비에 살구꽃은 지고

목련꽃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짖는다.

수실 늘인 장막에 찬 기운 스며들고

박산(博山) 향로에선 한 가닥 향 연기 오르누나.

잠에선 깨어난 미인은 다시 화장을 하고

향그런 허리띠엔 원앙이 수 놓였다.

겹발을 걷고 비취 이불을 갠 뒤

시름없이 은쟁(銀箏) 안고 봉황곡을 탄다.

금굴레[金靷] 안장 탄 임은 어디 가셨나요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인다.

풀섶에서 날던 나비는 뜨락으로 사라지더니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밭에서 춤을 춘다.

누구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구성진가

밝은 달은 아름다운 금술잔에 떠 있는데.

시름 많은 사람만 홀로 잠 못 이루어

새벽에 일어나면 눈물 자욱만 가득하리라.

 

(夏)

느티나무 그늘은 뜰에 깔리고 꽃그늘은 어두운데

대자리와 평상에 구슬 같은 집이 탁 틔었다.

새하얀 모시적삼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부채를 부치니 비단 장막이 흔들린다.

계단의 석류꽃 피었다가 모두 다 지고

햇발이 추녀에 옮겨져 발 그림자 비꼈네.

대들보의 제비는 한낮이라 새끼 끌고

약초밭 울타리엔 인적 없어 벌이 모였네.

수 놓다가 지쳐 낮잠이 거듭 밀려와

꽃방석에 쓰러져 봉황비녀 떨구었다.

이마 위의 땀방울은 잠을 잔 흔적

꾀꼬리 소리는 강남(江南)꿈을 깨워 일으키네.

남쪽 연못의 벗들은 목란배 타고서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온다.

천천히 노를 저어 채련곡(埰漣曲)부르니

물결 사이로 쌍쌍이 흰 갈매기는 놀라 날으네.

 

(秋)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고 새벽은 멀었지만

텅 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

못 위의 연꽃은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여전하고

우물가의 오동잎은 떨어져 그림자 없는 가을.

물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簾] 밖에는 서리 내려 밤 벌레만 시끄럽구나.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임 그리는 꿈을 깨니 비단 장막은 허전하다.

먼 길 나그네에게 부치려고 임의 옷을 재단하니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힐 뿐.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 장 써 놓았는데

내일 아침 남쪽 동네로 전해 준다네.

옷과 편지 봉하고 뜨락에 나서니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때

지는 달이 정답게 내 방을 엿보네.

 

(冬)

구리병 물소리 소리에 찬 밤은 기나길고

휘장에 달 비치나 원앙금침이 싸늘하다.

궁궐 까마귀는 두레박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동이 터오자 다락 창에 그림자 어리네.

발 앞에 시비(侍婢)가 길어온 금병에 물 쏟으니 

대야의 찬물 껄끄러워도 분내는 향기롭다.

손들어 호호 불며 봄산을 그리는데

새장 앵무새만은 새벽 서리를 싫어하네.

남쪽 내 벗들이 웃으며 서로 말하길

고운 얼굴이 임 생각에 반쯤 여위었을 걸.

숯불 지핀 화로가 생황을 덮일 때

장막 밑에 둔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련다.

난간에 기대어 문득 변방의 임 그리니

말 타고 창 들며 청해(靑海) 물가를 달리겠지.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옷 닳아졌을 테고

아마도 향그런 안방 생각하는 눈물에 수건 적시리라.

 

 

허난 설헌(許蘭雪軒, 1563∼1589)

명종, 선조 때의 여류 시인으로 이름은 초희. 허균의 누이로 일찍이 이달에게서 시를 배웠다.

여자에게는 이름도 없던 시대에 이름을 가졌고, 여자에게는 글도 가르치지 않았던 시대에 시를 지었던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주어진 시대의 모순에 순종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나가야 했기에, 비난을 감수해야 했으며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결혼 생활의 불만과 친정에 겹친 화로 인해 생긴 고뇌를 시작으로 달래며 조선조 여류 문학을 대표하는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섬세한 필치로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읊어,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

작품'유선시' 등 142 수의 한시와 규원가 등의 가사가 있고 시집으로 (난설헌집)이 전하며, 자신의 소망은 가슴 속에 둔 채 남의 일에 봉사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난설헌 작품 목록

《난설헌집(蘭雪軒集)》
난설헌시집소인         주지번
蘭雪軒詩集小印         朱之蕃
《난설헌집》제사       양유년
《蘭雪軒集)》題辭      梁有年
난설헌시
蘭雪軒詩
   오언고시: 소년행, 감우 4수, 곡자, 견흥 8수, 기하곡 (총 15수)
   五言古詩: 少年行, 感遇 4首, 哭子, 遣興 8首, 寄荷谷
   칠언고시: 동선요, 양지붕선화가, 망선요, 상현요, 사시사 4수(총 8수)
   七言古詩: 洞仙謠, 梁指鳳仙花歌, 望仙謠, 湘絃謠, 四時詞 4首
   오언율시: 출새곡 2수, 효이의산체 2수, 효심아지체 2수, 기녀반, 송하곡적갑산 (총 8수)
   五言律詩: 出塞曲 2首, 效李義山體 2首, 效沈亞之體 2首, 寄女伴, 送荷谷謫甲山
   칠언율시: 춘일유회, 차중씨견성암운 2수, 숙자수궁증여관, 몽작, 
   七言律詩: 春日有懷, 次仲氏見星庵韻 2首, 宿慈壽宮贈女冠, 夢作, 
             차중씨고원망고대운 4수, 송궁인입도, 제심맹조중연풍우도,
             次仲氏高原望高臺韻 4首, 送宮人入道, 題沈孟釣中溟風雨圖,
             황제유사천단, 차손내한북리운 (총 13수)
             皇帝有事天壇, 次孫內翰北里韻
   오언절구: 축성원 2수, 막수락 2수, 빈녀음 3수, 효최국보체 3수, 장간행 2수,
   五言絶句: 築城怨 2首, 莫愁樂 2首, 貧女吟 3首, 效崔國輔體 3首, 長干行 2首,
             강남곡 5수, 가객사 3수, 상봉행 2수, 대제곡 2수 (총 24수)
             江南曲 5首, 賈客詞 3首, 相逢行 2首, 大堤曲 2首
   칠언절구: 보허사 2수, 청루곡, 새하곡 5수, 입새곡 5수, 죽지사 4수, 서릉행 2수,
   七言絶句: 步虛詞 2首, 靑樓曲, 塞下曲 5首, 入塞曲 5首, 竹枝詞 4首, 西陵行 2首,
             제상행, 추천사 2수, 궁사 20수, 양류지사 5수, 횡당곡 2수, 야야곡 2수,
             堤上行, 추韆詞 2首, 宮詞 20首, 楊柳枝詞 5首, 橫塘曲 2首, 夜夜曲 2首,
             유선사 87수, 야좌, 규원 2수, 추한 (총 142수)
             遊仙詞 87首, 夜坐, 閨怨 2首, 秋恨 
             (이상 총 210수)
  부록: 한정일첩, 몽유광상산시서, 시왈, 광한전백옥루상량문 
  附錄: 恨情一疊, 夢遊廣桑山詩序, 詩曰, 廣寒殿白玉樓上樑文
  발: 허균
  跋: 許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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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초희요, 호는 난설헌, 자는 경번, 강릉태생이다. 


천재 여성 난설헌이 살았던 400여 년 전, 그녀 삶이 한(恨) 맺혔던 내면을 엿보기로 하자.


■하나. 정치적 배경


난설헌 나이 13살. 세상물정을 알아가기 시작할 즘 조정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을해붕당(1575년)이다. 이는 당시 김효원과 심의겸이 이조 정랑자리의 추천권을 놓고 벌인 싸움이다. 심의겸 측에서 문과 장원급제 출신인 동생 심층겸을 추천하자 김효원측이 반발, 조정은 싸움 회오리에 말려들고 이를 따르는 사림들은 두 패거리로 나뉘어 악질상소를 빈번히 올려 임금의 비답(임금의 결재권)을 흐리게 했다. 김효원의 집은 법궁(임금이 집무를 보던 곳)에서 동쪽인 건천동(서울 명동 근처)에 있었고 심의겸은 서쪽 정릉이다. 건천동 근처에 살던 이황, 조식 그리고 그 문하의 인재들, 난설헌의 오라비 허봉, 형부 우성전과 유성룡 등이 난설헌 아버지 허엽을 영수로 추대하여 동인이라 자처했다. 이에 맞서 서인은 이이와 성흔의 문하생들이 주축을 이뤘으며 정철 등이 서인의 영수로 박순을 추대했다. 당파가 갈린 조정은 연일 치고 받는 소용돌이 속에 서인과 동인이 번갈아 득세를 하고 몰락한다. 이 과정에서 난설헌의 아버지도 파면을 거듭하게 된다. 아버지 허엽이 경상관찰사직을 수행하다 죽음으로 돌아오고, 오라비 허봉이 서인 이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자, 선조는 즉각 함경도 갑산으로 귀양을 보낸다.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던 두 사람의 불행은 시댁 고부간 갈등에서 의지력을 잃었고, 붕당정치는 그녀 한(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둘. 사회적 배경


조선의 역사는 주자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유교사상이 주류를 이룬다. 삼존지도, 남존여비칠거지악, 재혼금지 등 여자들에게 굴욕적인 단어들이 조선 여인들의 삶을 옥죄었다. 난설헌 시(詩) 중에 이를 비판하는 글귀가 많아 그를 페미니스트라 함이다.


또한 난설헌은 서출이기에 관료사회에 진입할 수 없었던 스승 이달과 몸종 달래를 보며 오라비 봉에게 하소연하기를


“왜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아요? 서얼이 무엇이고 여자가 무엇이기에 차별받아야 되나요? 누군 가난하고 누군 부자고 (중략)선계(仙界)에는 차별이 없어요. 단지 내가 닦은 도만큼 대우를 받거든요. 거지도 없고 밥을 굶는 사람도 없고요” - 소설 백옥루 상량문 中



이렇게 자유와 평등이 억압된 세상 속 그녀는 불만을 시(詩)로 풀어냈다.


■셋. 정신적 사상


화담 서경덕. 가난한 집 태생이라 독학으로 학문을 탐구한 인물이다. 머리가 좋은 화담으로서는 기존의 유교적 사상들이 고리타분했을 것이다. 어느 날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접하게 된 화담은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외치던 신선세계에 눈을 뜨고, 노장사상의 대표적 논리인 도가사상에 깊게 빠지게 된다. 이기설 태허설 등을 집필하고 이(理)는 기(氣)에서 생성된 것이라는 주기철학, 인간은 우주의 기에서 왔고 사후 우주의 기로 환원되니 사생일여(死生一如)라 하여 기(氣)의 불멸성을 주장한다. 도가사상은 부정적 사변법(思辨法)을 이용, 유가(儒家)의 가치도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론적 본체관념(本體觀念)을 주장하고, 도덕은 인위조작하지 않으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이고, 무욕과 허무의 부정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대도(自然大道)에 순응함을 이상적 삶으로 제시하고 있다. 장자는 이를 절대자유와 절대평등의 사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도가는 이상주의요, 유가는 현실주의적 관념이 매우 강한 사상이다. 이런 화담의 제자가 바로 허엽이었기에 그녀의 정신적 사상도 아버지에서 연유한다. 난설헌은 유교적 사고보다는 절대 자유와 절대 평등을 강조하고 신선사상과 근접한 도가적 사고에 더 심취한다. 또한 그녀의 정신적 사상 바탕엔 스승 이달이 있다. 삼당시인(三唐詩人) 중 한 사람인 이달은 서출이기에 시를 짓고 읊으며 세상을 떠돈 인물이다. 그녀는 도가사상을 접목한 그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동경한다. 또한 태평광기(중국 설화집) 선편(仙編)을 탐독하며 신선세계를 동경했다. 그녀는 여덟 살 즘 광한루 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 이는 곧 신선사상과 도가사상의 묶음이다. 그녀는 신선사상과 도가사상을 실천해 자유와 적자 서자, 빈자 부자, 여자 남자의 평등을 몸소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넷. 혼인제도의 급변


한 세대 위인 신사임당은 오랜 전통 혼례의식인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친정에서 혼인 후 친정에서 삶) 풍습에 의해 혼인, 친정에서 정신적 사상적 부딪힘 없이 율곡이이를 낳고 살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설헌의 혼인 전 후, 혼인제도에 변화가 있었다. 남귀여가혼은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과 배치되고 남자가 주눅든다하여 폐지하고 친영제(親迎制·시댁에서 혼인 시댁에서 삶)를 시행하자는 주장이다. 와중에 조식이란 사람이 반친영제(처가에서 혼인 삼 일만에 시댁으로 감)를 들고 나와 신진사림, 훈구 모든 세력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니 허엽도 시류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반친영제 풍습으로 혼인하고 삼일우귀(三日于歸·혼인 후 삼 일만에 시댁으로 감)하게 된다. 혼습의 변화는 그녀 한(恨)의 또 다른 시작이다.


■다섯. 도가와 유가의 충돌


난설헌이 열네 살 되던 해인 1577년, 그녀는 안동김씨 문중 김첨의 아들 성립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혼사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자 난설헌은 아버지 허엽에게 당돌한 말을 한다.


“아버지. 한 번도 보지 않은 남정네에게 어찌 시집을 간단 말입니까? 소녀의 낭군은 소녀가 친히 보지 않고서는 혼인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 마음에 합당해야 혼인의 의례를 치를 것입니다.” - 소설 백옥루 상량문 中


결과는 아니었다. 며칠 후 난설헌은 남정네 복장을 하고 연죽(煙竹)을 든 채 몰래 성립의 집 담을 넘어 기필코 성립과 대면. 그를 보고 온다. 조선의 여인들은 유교적 억압으로 혼인은 곧 무덤임을 안다. 난설헌의 도가적 사고로 봤을 때 그녀는 스승 이달을 찾아가 혼인하지 않겠다고 앙탈을 부렸을 것이다. 도가는 트인 사고였다.


시어머니 송씨는 유교적 사고가 강한 친정을 두고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판서를 지낸 분들이다. 난설헌이 이런 시어머니 송씨를 만났으니 도가와 유가의 부딪힘은 늘 연약한 며느리 난설헌의 눈물이 되었다. 또한 똑똑한 난설헌에 비해 남편 성립의 사고는 나락되어 술과 여자를 즐기며 살았다. 그녀는 늘 외로움에 몸서리쳤으며 그녀 시(詩)들 중에 상당부분 이를 표현하고 있다.


“우물가 오동잎은 그림자 없으니 / 똑똑 떨어지는 물시계 가을바람에 울고 (중략) / 찬 이불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니 / 지는 달만 다정히 병풍 속에 깃드는구나” -사시사 추(四時詞 秋) 中


또한 난설헌은 임진왜란이 날 것이란 예언자적 시(詩)와 페미니스트 사상을 가진 시(詩)를 남겼지만 선계를 동경한 유선시의 수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도가와 유가의 충돌.


곧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불협화음은 결국 그녀의 기(氣)를 쇠진하게 만들었고, 이는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어미에게 한(恨)이 되었다.


두 아이의 죽음과 사산아 경험. 끝내 태아령(胎兒靈·아이들 영혼)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 붙여 지낸 그녀의 말로였다.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태평광기를 탐독하며 동경의 대상인 신선세계로 가는 꿈을 자주 꾼다. 허난설헌이 꿈꾸었던 도가적 이상은 현실에 파멸되었고, 스물일곱 젊은 나이, 이승에 한(恨)만 남긴 채 선계로 올라간 뒤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퍼옴: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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