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목향 정광옥 한글서예가
  • 목향 정광옥 서예가
강원의 얼 선양

양사언의 감호당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4. 12. 27.

양사언 선생은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라고 합니다.

선생은 늘 봉래(蓬萊)사용하였고 많은 문인들은 창해(滄海)라고 말하였지요.

많은 작품 속에서 보며 창해(滄海)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곤 합니다.

 

특히 차천로(車天輅)의 아버지 차식(車軾) 선생하고는 절친한 분이었습니다.

선생은 비록 태어난 곳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新北面) 기지리(機池里)에서

출생하였지만 지금도(高城郡)에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고 특히 청간정(淸澗亭)이나

능파대(凌波臺)이며 선생이 이곳에서 머무르는 곳에 필적이 남아 있어 더욱이 소중한

부분이 아닐까합니다.

 

능파대(凌波臺) 하면 이 지역 아닌 삼척부근에도 있어서 다소 작품에 해석하는

부분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문암에 있는 능파대(凌波臺)에 대한 문헌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금강산집(화전일랑1923)’을 서울대 규장각에서 복사하면서

금강산집에 간성에 대한 지지(地誌) 부분에 능파대에 세 글자가 양사언 선생의 필적이라고 기록을 했던군요 ,

참으로 놀라운 마음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홍경모(洪敬謨)1774(영조 50)1851(철종 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자신의 작품인

[耘石外史11]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학정(駕鶴亭)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양사언 선생은 40년이라는 관직생활을 하면서 유난히 고성군(高城郡)을 사랑하였던

모양입니다. 선생의 아들인 양만고(1574~1654)가 감호(鑑湖) 강릉 태어났다.

선생의 後妻 마저도 간성이씨 배후자로 얻었고 지금까지도 서얼이니 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양사언 선생에 대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선생의 부친은 양희수(楊希洙)는 조봉대부로 돈녕부 주부를 지냈고, 부인으로

파평윤씨, 진천송씨, 문화유씨 셋이 있었는데, 양사언은 문화유씨와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유씨는 삼척부사를 지낸 柳湋(유위)의 딸이다. 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양사언 선생은 관동에 이주하여 거처한 곳은 구선봉 아래 감호 곁이었다.

여기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당호(堂號)도 감호(鑑湖)라 하였다.

아울러 집 뒤에 비래정(飛來亭)을 짓고, 풍류(風流)를 벗삼아 소요하였다.

[1564년 명종19 48세 평창군수 임기 만료 후 고성군 구선봉아래 감호에서 거주,

비래정 건립 그 후 철원군수에 자원하여 도임]

이 시기에 지은 작품인 감호당(鑑湖堂),비래정(飛來亭)있다.대부분 봉래시집에

대한 내용은 이 시기에 작품이다.

 

 

 

鑑湖堂 감호당

 

問余何事卜閑居 무슨 일로 여기에 사냐고 묻는다면,

天下名區盡不如 천하의 명승지도 여기만 못하리라.

沙白海靑松翠路 흰모래 푸른바다 소나무 사잇길에,

芙蓉萬朶盡吾廬 연꽃 만 떨기가 모두 내 집에 있다네.

[蓬萊詩集卷之一]

 

 

飛來亭 비래정

 

海入壺中地 바다는 신선세계로 들어왔고,

樓居水上天 누대는 물위의 하늘에 떠있네.

靑浮雙玉筍 푸른빛 띠고 떠있는 것은 옥순이고,

紅折萬金蓮 붉은 꽃잎은 희귀한 연꽃이네.

煉汞龍吟鼎 수은을 달이니 용이 솥에서 우는듯,

餐霞骨已仙 안개를 먹음에 몸은 이미 신선일세.

君招黃鶴酒 그대는 황학을 불러 술을 마시게,

吾與白鷗眠 나는 백구와 함께 잠을 자리라.

 

수은(水銀)을 달이니: 水銀丹藥을 만드는 원료, ,神仙이 되기 위하여

단약을 달인다는 뜻이다.

[蓬萊詩集卷之二]

 

간성 현감인 택당 이식선생 또한 봉래 양사언 선생에 대한 싯구에 대하여

한수 지었다.

 

飛字入海歌 비자입해가

 

靑鯨鬣束彤玉管 푸른 고래 수염을 붉은 붓대에 묶어 놓고,

星泓晴日流銀漢 맑은 날 성홍에다 은하수를 쏟아 부어.

亭飛筆飛字自飛 비래정에 써 놓은 비 자 절로 날아가 버렸나니,

謫仙已矯凌雲翰 적선께서 능운필(凌雲筆)을 휘둘러 남긴 글씨였네.

霓旌羽蓋碧海東 신선의 수레 타고 바다 동쪽 향하실 때,

蕭君肯顧蕭齋空 소군이 텅 빈 소재 다시 돌보려 했겠는가.

眞官錦誥詔風伯 진관이 명을 받들고서 풍백을 불러들였거늘,

不待點睛催龍公 눈동자에 점 찍어서 용공을 깨울 게 있었겠나.

人間長物唯此取 세상의 많은 물건 중에 오직 이것을 취하다니,

物外奇蹤定無偶 방외인(方外人)의 기이한 자취 정녕 짝이 없어라.

書蟲剝紙蝸畫涎 달팽이 기어다닌 좀먹은 책이나 뒤적이며,

天祿靑藜欺白首 나는 백발로 언제까지 천록의 청려에 속으려나.

 

양공 사언(楊公士彦)이 일찍이 감호(鑑湖) 호숫가에다 비래정(飛來亭)을 세우고는

큰 글씨로 비() 자를 벽에다 붙였는데, 양공이 유배지(流配地)에서 세상을 떠나던

날에 바람과 우레가 치면서 정자의 벽에 붙어 있던 비()자의 글씨를 휘감아 바다

속으로 집어넣었다는 기이한 전설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양공의 적자(嫡子)인 이일(理一)이 이를 소재로 해서 제공(諸公)에게

시를 청했기 때문에, 나도 부득이 여기에 응하게 되었다.

[澤堂先生續集 6]

 

출처-퍼온글

'강원의 얼 선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난설헌  (0) 2015.03.01
양사언  (0) 2015.02.08
양사언 의 시   (0) 2014.12.27
양사언의 시  (0) 2014.12.27
이율곡선생의 시 화석정  (0) 2014.12.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