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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향 정광옥 한글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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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얼 선양

한용운의 시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8. 9. 3.



거짓이별


-한용운(<님의 침묵>1926)

당신과 나와 이별한 대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데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 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 밑의 푸른 구름이, 쪼이는

가을 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피는 식어 가도 눈물은 더워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언덕앤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유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 


 

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는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한다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한용운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해는 지는 빛이 곱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님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어여쁩니다.

떠나신 뒤에 나의 환상의 눈에 비치는 님의 얼굴은 눈물이 없는 눈으로는 바로 볼 수가 없을만치 어여쁠 것입니다.

님의 떠날 때의 어여쁜 얼굴을 나의 눈에 새기겠습니다.

님의 얼굴은 나를 울리기에는 너무 더 야속한 듯하지마는,

님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어여쁜 얼굴이 영원히 나의 눈을 떠난다면,

그때의 슬픔은 우는 것보다도 아프겠습니다.


사랑의 측량


- 한용운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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