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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조

대관령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24. 6. 12.

  대관령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신사임당(申師任堂)

 

 

늙으신 어머니를 임영에 두고

홀로 서울 향해 떠나는 서글픔 마음

머리 돌려 바라보니 북평이 한눈에 펼쳐지고

흰 구름 날아 내리는 저문 산은 푸르기만 하네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坪時一望(회수북평시일망)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어휘풀이]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 :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봄. 오래전 서울에 신행 가서 이태를 살기도 했지만, 혼례를 올린 지 20년 되던 해(38세) 홀로된 친정어머니를 두고 강릉 북평촌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살러 갈 때의 소회를 쓴 시다.

-慈親(자친) : 인자한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 어머니를 이를 때 쓴다.

-臨瀛(임영) : 강릉의 옛지명, 고려 34대 공양왕 때 강릉을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별호를 임영(臨瀛)이라고 했다.

 

 

[역사이야기]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은 조선 중기 때의 여류 서화가, 문장가로 호는 사임당(師任堂) 또는 사임당(思任堂), 사임당(師姙堂)으로도 사용했다.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은 사임당의 어머니를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서 살게 했으므로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성의 예의범절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랐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19세에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였으나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마친 뒤 서울로 올라갔다. 시집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고 한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지내기도 했으며 셋째 아들 율곡 이이(李珥)도 강릉에서 출산했다. 1541년 38세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壽進坊:지금의 종로구 수송동과 청진동)에 살다가 1551년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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