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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조

竹西 朴氏 (竹西 詩集

by 목향정광옥서예가 2012. 4. 11.

竹西 朴氏 (竹西 詩集

죽서는 반남(潘南) 박은(朴誾)[山+言의 誤字] 후손인 사인(士人) 박종언(朴宗彦)의 庶女로 호는 반아당(半啞堂)이라 하였다. 금원(錦園)과 같은 원주출신이며 1819년경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서 집안 살림이 매우 어려워 죽서는 길쌈을 하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고 한다.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세수만 했지 화장은 안 했다고 한다. 그 후 언제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죽서는 서기보(徐箕輔)(1785-1870)의 소실이 되었다.
죽서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여류시인 운초(雲楚)와 금원(錦園)처럼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였으며 남성문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그러나 죽서는 아깝게도 33세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남편인 서기보가 죽서의 유고(遺稿)를 모아 1851년경에 죽서시집을 펴내었다. 죽서시집의 序文은 서기보의 인척[再從]인 서돈보(徐惇輔)가 쓴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홍한주(洪翰周)가 써 준 것이며, 발문(跋文)은 앞서 소개한 금원(錦園)이 썼다. (참고: 금원은 기녀(妓女) 시인).

 

불분권(不分卷) 1책. 목활자본. 1851년 남편 서기보(徐箕輔)의 재종 돈보(惇輔)가 편집·간행했다. 돈보의 서문과 친구인 금원의 발문이 있다. 임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이나 늙음에 대한 한탄 등 감상적이고 섬세한 마음을 읊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 시인. 호는 죽서(竹西). 본관은 반남(潘南). 어려서부터 《소학(小學)》과 경사(經史)·고시문(古詩文) 등을 탐독하였고 10세에 이미 뛰어난 시를 지어 문학적 재능을 나타냈다. 중국의 문장가인 소식(蘇軾)·한유(韓愈)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문은 서정적이며 감상적이고 임을 그리는 여심을 나타내는 내용이 많다. 침선(針線)에도 능하였고 동시대의 시인 금원(錦園)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교유하였다. 병약하여 30세 전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적(聞笛)》 등 126수의 시작(詩作)이 전해지며, 저서로 《죽서시집》이 있다

 

신 웅 순*

죽서는 원주 사람이다. 선비인 박종언의 서녀로 태어나 서기보의 소실이 되었다. 호는 반아당(半啞當)이며 생몰 연대가 확실치 않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스스로 반벙어리, 반아당이라고 호를 붙였다. 길지 않은 생애를 병으로 고생하며 한시 짓기를 평생의 낙으로 삼았고 반생은 바느질로 반생은 시를 썼다고 말한 죽서.

죽서가 죽은 뒤 남편 서기보는 유고를 모아 『죽서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집에는 180편 정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서문은 남편 서기보가 쓰고 종친 서순보가 부서했다. 발문은 삼호정 시단이었던 그녀의 절친한 친구, 김금원이 썼다.

거울 속 병든 이 몸

그 누가 가여워하랴

원망으로 생긴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오.

저승에서 님과 내가

바꾸어 태어난다면

님을 그리워하던 오늘 밤 내 마음을

그 때 아마 아시겠지요.

- 님에게 (허경진 역, 『한국의 한시 21』(평민사,1987),66쪽.)

鏡裏誰憐病己成 不須醫藥不須驚

他生若使君如我 應識相思此夜情

- 寄呈

그리움이 한이 되어 병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수척한 얼굴 님은 알아줄까.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 저승이 어딘지 모르지만 바꾸어 태어난다면 그 때나 님은 내 마음을 알까? 애절한 님에 대한 그리움이 안스럽기까지 하다.

새벽에 바람처럼 님 편지 오느라고

청사초롱 꽃이 지고 거미줄 쳤었던가

둘이서 그리는 정

그 누가 더 간절할까

밝은 달만 은근히 아는지 모르는지

-님 편지를 받고서(위의 책,78쪽.)

一札飄然到曉時 靑燈花落喜蛛垂

兩邊情緖誰相念 明月慇懃知未知

- 夜吟

천정에서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더니 편지 한 장이 새벽에 왔다. 둘이서 그리는 정은 아무도 모른다. 밝은 달도 아는지 모른다. 아무도 알 리가 없는 끝없는 그리움. 그 누가 더 간절한지 정말 아무도 모를 거라는 것이다.

학문과 시재의 소통 공간이었던 삼호정 시단. 그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고 싶어했던, 서로의 문학적 재능을 겨뤘던 김금원, 김경춘, 김운초, 김경산, 박죽서 다섯 여인들의 5인 시회였다. 서로의 시재를 인정하고 격려해주었던, 시대가 외면했던 조선 최초의 여성 시회였다. 이들은 교육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이었다.

박죽서의 죽음으로 삼호정 시단은 자연 해체되었다.

다음은 금원의 『죽서 시선』의 발문이다.

아아, 이 시집은 죽서가 지은 것이다. 이를 대하니 마치 그 사람을 보는 듯, 맑은 눈동자와 붉은 빰이 은은히 글씨 위에 비친다.

아아, 그 맺어짐이여.

죽서를 아는 자들이 모두 그의 재주와 지혜가 규중에서 이름난 것을 알 뿐이지만, 그가 고요하게 살며 자연을 즐기는 정취가 있음은 오직 나만이 안다. 올바른 눈을 가진 자가 그 시를 읽는다면, 또한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죽서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인데, 어려서부터 한 고을에 살다가, 자라서도 또한 같은 한양으로 시집왔다. 서로 왔다갔다 하며 주고 받은 시가 많았는데, 이제 갑자기 옛자취가 되었다. 저 세상에서 나와 죽서가 함께 남자로 태어나면 혹은 형제가 되어서, 혹은 친구가 되어서 서로 시를 주고 받을는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이 잘못 되었는지? 아아, 슬프다.

- 신해넌(1851) 황양월 중순에 금원 쓰다 (위의 책,96쪽. )

금원을 비롯한 삼호정 시단과의 우정은 이렇게 애틋했다. 그들이 우정을 나누었던 출구는 삼호정 외에 달리 그 무엇이 있으리. 죽서는 금원과는 매우 절친했다. 죽서의 ‘금원의 편지를 받고’ 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벗이 날 위로하러 재삼 편지를 보내니/ 몇 줄 안 된 글이지만 그 뜻은 넘쳐라. /변변치 못한 술일망정 약이 되나니, /시든 꽃 비록 있다지만 쉬 떨어질레라. /저마다들 병을 얻어 서로 찾지 못했지만/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게 그 어찌 인정이랴./ 여러 벗님네들 문안받기 부끄러우니,/속세 떠나 살자던 생각 도리어 옅어졌어라 ’

죽서는 일찍 갔다. 인사도 시간이 없었는지. 총총히 떠난 벗 죽서. 친구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서인들 친구들이 그립지 않았을 것인가. 김운초는 죽서에게 시「죽은 벗에게 고함」을 헌사했다.

물가에 피어난 꽃을 꺾어가는 배를 세워두고

문득 백로주 한 잔과 함께 그대를 떠나 보내네

이별주 마시고는 미친 듯이 노래하니

이번 가을 만날 것을 달빛에 다짐했네

밀물은 넓디 넓어 바다에 가깝고

빈 누각에 달님만 찾아와 밤낮으로 머물러 있구나

명승지에 있으니 정신이 맑기만 한데

그대는 어찌하여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가 (권현정, 『조선의 사랑』(현문미디어,2007),199쪽.)

* 시조시인 ․ 평론가 ․ 서예가, 중부대교수

- 신웅순,「죽서의 시」,『월간서예』(미술문화원,2009,12),144-145쪽.

[출처] 제 12 화 죽서의 시|작성자 석야

 

 

춘조(春鳥) 죽서 박씨 (竹西 朴氏)

窓外彼啼鳥

창외피제조

何山宿便來

하산숙편래

應識山中事

응식산중사

杜鵑開未開

두견개미개

창밖에 우는 저 새야

어느 산에서 자고 이제야 왔느냐

응당 산중의 일을 네가 알려니

두견화는 피었든 안 피었든

죽서 박씨(竹西 朴氏) 생몰년은 확실하지 않으나 대체로 1817년에서 1851년 사이의 기간에 생존했음이 아닌가 보고 있다.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죽서(竹西)이며 사인(士人) 박종언(朴宗彦)의 서녀로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서울의 부사(府使) 서기보(徐箕輔)의 부실(副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아버지 박종언에게서 소학(小學)과 경사(經史), 그리고 고작시문(古作詩文) 등을 탐독하고, 성장해서는 소동파(蘇東坡)와 한유(韓愈)를 배웠다고 한다. 당대의 이름난 기녀이며 여류시인인 김금원(金錦園)과 운초(雲楚) · 경산(瓊山) · 경춘(瓊春) 등의 여류시인들과 함께 현재의 용산에 있었던 삼호정(三湖亭)에서 시단(詩壇)을 만들어 활동했고, 서유영(徐有英) · 홍한주(洪翰周) · 송주헌(宋柱獻) · 서득순(徐得淳) · 이승원(李承元) 등의 시인들과 교유했다. 병약하여 30세 전후로 짧은 일생을 마쳤다. 179편의 시가 죽서시집(竹西詩集)에 전하는데, 총 166수의 한시가 시대 순으로 실려 있다. 작품은 매우 서정적이며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심(女心)과 기다리다 지친 규원(閨怨)을 나타내는 내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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